'통신비 2만원'에서 재현된 정부·여당의 '독선'

[the300][300소정이: 소소한 정치 이야기]

서진욱 기자 l 2020.09.16 14:06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경호 국민의힘 간사(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4차 추경 심사일정 여야 합의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여야가 오는 22일 4차 추가경정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4차 추경안 심사 쟁점은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 여부다. 만 13세 이상 국민 4640만명에게 통신비 2만원씩 지급하는 내용으로, 국민 10명 중 9명이 지원 대상이다. 소요 예산은 9300억원이다. 예산안 총액(7조8000억원)의 12%에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작은 정성을 거절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야권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며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역시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생색내기'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도 반대했다. 민주당의 대권잠룡인 김경수 경남지사마저 "통신비 지원 예산을 무료 와이파이망 확대 사업에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여론도 반대로 기울었다. 리얼미터가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통신비 2만원 지원 정책을 '잘못한 일'이라고 평가한 응답비율이 58.2%로 나타났다. '잘한 일'은 37.8%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강행 결정을 내렸다. 가계 고정지출을 줄여 국민들의 통장잔고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93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별다른 경제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통신비를 2만원씩 줄여주고 소비진작효과를 기대하는 것부터 무리다. 개인당 2만원은 가용소득이 늘었다고 체감하기엔 너무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로 이동통신사들의 매출을 보전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4차 추경안 검토보고서에서 "통신사 매출 결손분을 정부 재원으로 지원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추경안의 핵심 집행 방침인 '선별 지원' 취지에도 어긋난다. 정부여당은 여러 차례 이번 추경안의 경우 코로나19(COVID-19) 여파가 큰 국민들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청년에게 2차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통신비 지원 대상을 만 13세 이상으로 정한 근거가 '코로나 여파가 커서'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여당 주장대로 2만원이 절실한 국민들도 있다. 그렇다면 전 국민이 아닌 이들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게 선별 지원 취지에 부합하는 결정이다.

정부여당은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을 강행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식 사고를 또 다시 보여줬다.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 예결위는 18일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4차 추경안 심사에 들어간다. 마지막 재고의 기회다. 우리 주장과 다른 목소리에도 귀기울이는 민주당의 모습을 이번엔 볼 수 있을까.

※리얼미터 조사는 YTN 의뢰로 지난 11일 실시했다. 무선(80%)·유선(20%) 자동응답 방식으로 18세 이상 유권자 1만50명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최종 응답자는 500명이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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