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소정이]'야당 불감증' 여당이 움찔할 때

[the300][300소정이: 소소한 정치 이야기]

김상준 기자 l 2020.11.25 05:30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강행하고 있다.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을 단행한다. 국민의힘이 '독재'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판해도 꿈쩍도 않는다.

철옹성 같은 모습이다. 민주당에게 국민의힘의 비판은 '발목잡기'일 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23일 "야당의 집요한 방해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야당의 의도적 시간 끌기에 공수처 출범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부동산 3법'이 통과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이 '세금폭탄', '전세대란', '임차인-임대인 갈등' 등을 우려해도 민주당은 '허위선동'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각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관행을 깨고 바로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로 올라간 '부동산 3법'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부글부글 끓고만 있다. 국회 안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당 내에선 장외투쟁 필요성도 거론되지만 국회 밖으로 나가면 오히려 민주당에게 이득이다. 이쯤 되니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반포기 상태'다. 패배의식이라기 보단 무력감에 가깝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방법이 없다는 한숨이다.

하지만 '야당 불감증' 민주당도 움찔할 때가 있다. 국민의힘이 예상치 못한 선수를 칠 때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대표적인 예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정의당과 만나 해당 법안 통과에 힘을 싣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바로 다음날(11일) 당 노동존중실천의원단 당론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법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논의도 같은 양상이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6월3일 "배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를 앞세워 기본소득 카드를 꺼냈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5일 뒤인 8일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한다"며 논의에 뛰어들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직후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구체적 입법 준비에 나섰다.

거대여당으로서 정책·어젠다 경쟁에서 우위를 내줄 수 없다는 압박감이 읽힌다. 압박감은 조급함으로 이어지고, 조급함은 실수를 낳는다. 민주당은 서둘러 발의한 중대재해법을 당론으로 발의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당초 연내 처리를 전망했지만 돌연 "상임위 심의에 적극 임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해당 법안의 연내 제정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이 반응할 때를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의 반응은 드물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공세가 타격감이 전혀 없어서, 또는 꽤 거슬리지만 적당히 뭉개고 가는 게 유리해서 자주 무반응을 택한다. 민주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그 지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선제적인 정책 제시와 어젠다 선점이 필요하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책과 어젠다를 발굴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긴 어려울 수 있다. 인물을 찾기에도 바쁘다는 의원들이 많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당에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 인물이 들어올 가능성은 낮다. 국민의힘이 먼저 변신할 때 새 얼굴은 제 발로 오게 돼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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