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풀린 韓美 정상 '친서 외교'…"레이건 각하, 야구가…"

[외교 잠금해제] 30여년 전 대통령들은 어떻게 美와 친서 주고 받았을까

김지훈 l 2022.05.16 09:15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당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축하 친서를 받는 등 '친서 외교'에 합류한 가운데 과거 한미 정상들은 친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주목된다. 외교부가 최소 30년이 경과된 외교문건 가운데 심의를 거쳐 올해 비밀 해제한 것들 중에는 '한. 미국 대통령 간 친서 교환, 1985-91' 문서철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미측 대통령에 전달한 친서 사본이 공개된 것이다.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필리핀 지원 요청을 받고 '방위비 부담'을 이유로 거절하는 모습이나, 1985년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 야구계 숙원인 '올림픽 종목 편입'에 힘을 보태달라는 미측 요청을 받고 '시범경기종목'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서철에서 1985년 2월 25일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문건은 수신인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으로 기재돼 있다. 해당 문건에는 "야구가 1988년 올림픽 정식경기 종목으로 채택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각하와 의견을 같이 합니다"면서도 "1988년 올림픽 정식경기종목은 올림픽헌장의 규정에 따라 대회 개최 6년전인 1982년 5월에 이미 확정 돼 더 이상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대신 "본인(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자 합니다"라며 시범경기종목에 넣는 방안을 거론했다. 야구가 1984년 LA올림픽을 시작으로 88서울올림픽에도 시범경기종목에 채택된 것을 감안하면 야구가 국기(國技)인 미측의 '야구 사랑'에 동맹인 한국도 호응한 격이 됐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SSG랜더스와 키움히어로즈의 경기, 1루 키움 응원석에서 야구팬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2022.5.8/뉴스1


남북 문제 해결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관심에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담은 친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1985년 5월 7일자 문건을 보면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 앞으로 독일 본에서 열린 서방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거론된 것과 관련해 "동 정상회담에서 최초로 한반도 문제가 정치선언에 포함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각하의 우호적 지지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라고 썼다. 또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지속적 협조를 요청했다.

문서철에서 1988년 3월 7일 노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문건은 레이건 대통령에게 취임 축하 인사를 받고 "양국관계에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아 작성한 답신이다. 여기에는 88서울올림픽을 맞아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을 요청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노 대통령 재임기에 방한하지 않았다. 대신 이듬해 1월 차기 대통령에 취임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한달 뒤인 2월 방한해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때로는 우리 정상이 까다로운 요청을 받기도 했다. 외무부 보고서를 보면 레이건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필리핀에 대한 지원에 직접적으로 또는 기업체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희망함'이라는 요지의 친서를 1988년 3월 30일 노 대통령에게 발송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1988년 4월 21일자 문건에는 "한국이 자체 방위를 위해 안고 있는 무거운 방위부담이 커다란 제약이 되고 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기재됐다.

외무부가 해당 보고서에서 '아국은 남북한간 군사력 불균형 상태에서 과도한 방위비를 지출하면서도 한·미 연합방위 태세 유지를 위한 기여 증대 방안도 강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 바람'이라는 대책을 기재한 것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이 외무부의 정세 판단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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