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기선 잡은 여권, 내년 4월 웃으려면…

[the300][종진's 종소리]

박종진 l 2023.11.06 05:33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고양=뉴시스] 조수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1.03.

#73년 전 이맘때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됐던 장진호 전투에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12만의 중공군에게 포위됐던 미 해병대 1사단 병사들은 다급히 무전을 쳤다. "투시 롤(초콜릿 사탕 브랜드)이 떨어졌다. 빨리 보내달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절한 외침이었다. 사방에서 전우가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박격포탄을 뜻하는 해병대의 은어 '투시 롤'을 사용했다. 적군의 도청을 걱정해서다.

그러나 후방의 통신병은 이를 몰랐다. 중공군의 대공 사격을 피해 역시 목숨을 건 지원 항공기가 투하한 수백 개의 보급품 상자 안에는 진짜 초콜릿 사탕이 들어있었다. 현장을 몰라 소통이 안 돼 벌어지는 대참사다.

#"제발 민심을 제대로 전해주시라" 얼마 전 사석에서 정부 고위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빤한 얘기지만 세상의 대부분 일은 빤한 걸 몰라서 혹은 지키지 않아서 틀어진다. 믿기 어렵겠지만(?) 역대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실은 가장 바쁘게 일한다. 때로 당위에 때로 서류와 숫자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현장의 사정은 잘 모를 때가 적잖다. 이 관계자는 "일반인의 상식도 놓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연일 현장을 강조하고 나선 건 늦었지만 다행이다. 당선 직후 지지율 50%(이하 한국갤럽)가 넘던 시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 추진력과 소통이 주요 긍정 평가 이유였지만 지금은 경제·민생에 이어 소통 미흡이 오히려 부정 평가 이유로 꼽히는 점을 고려하면 일종의 초심회귀다. 집권 1년 6개월 만에 신선함이 거침으로 뚝심이 독단으로 여겨지는 데 대한 해법을 현장이란 원점에서 찾는 셈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민생, 결국 생활이다. 아무리 옳은 이념이라도 일상의 체감을 넘어서기 어렵다.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에 의아해 했던 여론이 의대 정원 확대에는 환호한다. "윤석열의 추진력이라면 의대 정원 확대가 가능하겠다"가 많은 이들의 기대다. 여권이 '메가 서울'과 '공매도 금지'로 이슈 주도권을 틀어쥔 것도 삶의 문제를 정확히 찔러서다.

총선을 향한 여정이 본격화됐다.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천명한 윤 대통령이지만 그런 정치를 하려면 또한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활을 건 승부에서 언제든 적이 동지로 악재가 호재로 뒤바뀔 수 있다. 절망을 안겼던 장진호의 초콜릿 사탕도 이어진 영하 30도 혹한에서는 유일하게 녹여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돼 병사들을 구했다. 선거판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른바 '바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총선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변수가 많아도 질문과 답은 현장에 있고 민심을 잡는 건 감동이다. 감동은 상대가 예상한 수준을 뛰어넘을 때 나온다. 대개 희생과 헌신이 따른다. 옥스퍼드대의 자긍심은 칼리지 입구 벽면에 가득 새겨진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참전해 전사한 동문들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중진 누구는 어디에 출마하라 따위의 정치공학적 얘기가 아니다. 진짜 자기를 던지는 희생이 관건이다. 그래야 표심을 뒤흔드는 굵직한 정책의 진정성도 국민이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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