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촌놈'에서 '왕의 남자'로…이정현이 다시쓰는 韓 정치사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배소진 기자 l 2016.02.17 05:30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4.13총선, 가장 결말이 궁금한 지역구 중 전남 순천·곡성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법 하다. '1번'이 적힌 명함을 꺼내들기도 힘들다는 호남에 입성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전남 곡성이 고향인 이 의원은 TK(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에서 '비주류'라면 비주류다. 18대 국회 입성 전부터 '박근혜의 입'을 자처했지만 당직자 출신 초선 비례대표에 불과했다. 다른 '친박' 주류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는 그래서 중요했다. 흔히 재보선은 '0.5선' 정도로 치부되기 쉽지만 '호남 1석'은 그에게 재선급을 뛰어넘은 중량감을 안겨준 것이다.

정치적 거물로 성장하고 이름 앞에 '박근혜 대통령'을 덧입힌 지금, 그는 당내 주류세력인 '친박계'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서 있다.

[키워드-박근혜의 입]
그의 별명에는 '朴'이 빠지지 않는다. '박근혜의 남자'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 '박근혜의 호위무사'…그는 2008년 박 대통령의 4년간 발언을 묶어 '박근혜 어록' 책까지 펴낼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자랑한다. 최측근 중에서도 가장 박 대통령의 의중을 잘 헤아리는 이로 평가받는다.

이 의원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이 의원을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17대 총선에 당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광주에 혈혈단신 출마했던 그를 인상깊게 본 것.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호남을 홀대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며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10분이 넘어가는 그의 열변을 들은 박 대통령은 그 얘기를 수첩에 적었다. 연고도 연줄도 없던 당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이 의원에게 박 대통령은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준 구원자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그날 이후 이 의원은 박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06년까지 당대표와 부대변인으로, 2007년 경선 패배 후 3년간 MB정부와 거리를 두며 이른바 '정치적 칩거' 생활을 이어갈 때는 '대변인 격'이라는 직함으로 박 대통령을 지켰다.

2012년 대선에서 그는 박 후보 캠프 공보단장으로 활약,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내며 스스로 '왕의 남자'가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014년 8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신임당직자 임명장수여식 및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이정현 최고위원을 업어주고 있다./사진=뉴스1


[키워드①- 호남]
"한나라당 전신 정당과 정권이 호남에 대해 어떻게 해왔길래 호남인들이 저처럼 깊은 상처를 받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정말 시간과 열정과 작은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런 과정과 노력이 없이는 호남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다.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르면서 왜 미안해하고 왜 호남에 대해 이제부터는 더 관심을 갖겠다는 것인가? 순서가 바뀐 것이다. 그것도 그랬으려니 하는 식으로해서는 안 된다. 단 한번을 호남지역에 가더라도, 단 한마디를 하더라도 호남인들의 상처가 원인이 뭔지를 진정성을 갖고 파악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 더딘 것 같지만, 그것이 상처치유를 가장 빨리 하는 것이다."

2004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던 이 의원이 당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그저 한 당직자에 불과한 그의 충고가 여러 매체에 전문 그대로 실릴만큼 관심을 끌었던 건 그가 바로 호남출신이기 때문이다.

26년만에 처음으로 호남에서 여당 깃발을 꽂은 이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독보적으로 귀한 '자원'이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때문에 이 의원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는 김무성 대표가 괜히 그를 최고위원에 임명하고, 또 업어주기까지 한 게 아니다. 

호남에서의 승리, 7.30 재보선의 대승은 김 대표를 '선거의 왕'으로 만들었다. 당 대표에 오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입지를 공고히 한 것. 반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이던 김한길, 안철수 의원은 4개월만에 동반사퇴하며 대표직을 내놔야 했다. 말 그대로 '이정현' 효과다.

이 의원은 호남에서만 4번 출마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광주광역시 시의원에 도전해 10%를 겨우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주 서구을에 처음 도전장을 내민 17대 총선 결과는 참혹했다. 한나라당 후보인 그가 얻었던 득표수는 겨우 720표.

광주 서구을에 재차 도전한 19대 총선에서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39.7%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하며 당선 가능성까지 엿본 것.

그리고 기적을 일궈낸 7.30 재보궐 선거에서 그가 얻은 득표율은 49.4%. 중앙당과 지도부의 지원을 거절하는 등 새누리당을 철저하게 숨기고 개인기로 승부한 게 주효했다. 특히 고향인 곡성 뿐 아니라 순천에서도 앞서며 '지역주의'를 타파한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20대 총선에는 호남지역에서 '제2의 이정현'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지는 여권인사가 크게 늘었다.

[키워드②-예산폭탄]
사람들 뇌리 속 이정현은 곧 '예산폭탄'이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로 입성한 18대 국회에서 예산결산위원회에 4년 내내 포함되며 '호남예산 지킴이'를 자처했다. 

그가 예결위에 입성한 첫 해인 2008년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에서 20년만에 처음으로 호남 출신 예산안조정소위원(계수조정위원)을 배출한 때였다. 당시 여야는 MB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예산 삭감 여부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호남지역 예산인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 예산조차 500억원 삭감 의견을 낼 정도. 이 때 정부 원안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이 이 의원이었다.

하지만 재입성한 19대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014년 이 의원은 예결위 입성엔 성공했지만 예산안조정소위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여당의원 명단에 내정돼 있었지만 막판 명단에서 제외됐다. 야당의원들이 담당해줄 수 있는 호남지역보다 3년간 예결소위에 포함되지 못한 강원 지역에 대한 배려가 더 급했던 탓이다. 

예산폭탄을 호언했던 이 의원의 성적도 아쉬움이 남았다. 

예산안이 통과된 다음날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순천과 곡성지역 예산을 당초 정부안보다 상임위와 예결위에서 더 확보했다"며 "밥먹다가도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 예산 설명을 마다하지 않았고, 심야 심의 내용을 새벽 3~4시를 가리지 않고 점검해 지킬 예산을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지역예산 등 19개 사업에서 67억원을 증액하는데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

2015년은 더 큰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예산조정소위원으로 선정이 됐지만 15명인 정원을 여야가 1명씩 늘려 17명으로 하려던 것을 같은 당 김재경 예결위원장이 저지한 것이다.

뒤늦게 추가된 이 의원은 또다시 소위에서 제외됐다. 일각에선 이 의원이 추후 사·보임을 통해 예결위에 '꼼수합류'한다는 예측이 제기됐고, 이는 야당의 '순번제 사·보임' 시도까지 불러오면서 한동안 예결위를 파행으로 몰고갔다.

그래도 성과는 남았다. 정부안에도 없던 '자동차 1000만대 생산도시 기반조성 사업' 예산 30억원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포함된 것. 광주지역 최대 관심사업으로, 이 의원의 물밑 활약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 의원으로 인해 호남지역에 첫 지역구 의원을 갖게 된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호남권 광역단체장들과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이 한장의 사진]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이 의원은 자전거 한 대로 골목을 누볐다. 후줄근한 동네 아저씨같은 복장은 이동에 최적화된 것이란 설명이다. 19대 총선 당시 임금님 복장으로 유세를 펼쳤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표 법안]
18대와 19대 국회에서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총 40건. 뒤늦게 입성한 19대에는 8건을 발의했다. 담당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이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진 건 단연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 일명 '이정현법'이다. 공공보건의료 전문 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국립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최근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 의료 취약지 근무기피 현상 등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이 의원은 지역구인 순천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국립보건의료대학을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복안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혼란만 초래할 것이란 비판이 제기하는 분위기다. 지역 내에서는 순천대 의대 신설을 더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요!주의]
이 의원은 유려하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유명하다. 말로 '점수'를 따지만 자칫하면 반대로 잃기도 쉽다. 

지난해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문 당시 그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란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순천 민심도 들끓어 이 의원은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형사고발까지 당하기도 했다. '국민이 아니다'는 발언은 진의가 왜곡된 것이라 항변했지만 결국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이보다 앞서서는 "광주시민들이 이정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2012년 박 대통령 선거 공보단장 시절에는 안철수 후보를 향해 연일 '돌직구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프로필]
△전남 곡성 출생(1958년생) △순천주암중 △광주 살레시오고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단 단장 △한나라당 정책기획팀장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팀장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18대 국회의원(비례) △19대 국회의원(전남 순천시곡성군) △새누리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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