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원내사령탑 된 'JP 제자' 정진석의 '사다리 정치'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정진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구경민 기자 l 2016.05.13 05:50

편집자주 '국회의원 사용설명서'의 2.0 새 버전을 선보입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 입성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지난 3일.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에 선출된 정진석 당선인은 선배 동료 의원들 뿐 아니라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도 악수를 건네며 감사를 표했다. 앞서 4월13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남 부여·공주·청양 지역에 선출된 정 당선인은 본인의 당선을 주위의 공로로 돌렸다. 원내대표 자리에 오른 그는 바로 다음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협치(協治)'를 거듭 강조하며 '90도 폴더인사'와 '격한포옹'으로 친근함을 각인시켰다.  

키 183cm에 90kg이 넘는 호걸풍 외모와 달리 정 원내대표는 주변 인사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섬세하다. 당내 계파를 넘어 여야를 아우르는 '마당발'로 통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가 취임일성으로 강조한 '협치'의 성공을 위해선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16년 만에 3당 체제의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된 가운데 오른 원내사령탑 자리인만큼 그의 어깨가 무겁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에 따른 당 수습을 이끌고 차기 전당대회 준비 등을 주도할 비상대책위원장에도 정 원내대표를 임명했다. 여당 원내대표를 맡을 만큼 중진 반열에 오른 정 원내대표의 '정치인생 2막'이 올랐다.  

[키워드①-사다리 정치]

정 원내대표의 정치철학은 '사다리'다. 그는 서로 단절된 곳을 잇고,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이 바로 '정진석표 정치'라고 말한다.  

'사다리 정치'는 그의 정치 인생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8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시절 이명박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던 그는 갈등관계에 있던 이 대통령과 현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을 성사시켰다. 이는 '정권 재창출'의 중심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 원내대표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무수석으로서 "8월 21일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성사시킨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하던 시절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다각도의 통로를 만들었다. 매월 한 차례씩 '고위 당정 협의회'를 총리공관과 국회에 번갈아 가면서 열었다. 주요 정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 마다 '당정 정책 협의회'를 열어 국회 상임위 위원들과 정부 장차관·실국장,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무수석이 논의했다. 이로써 현안과 관련한 정책과 관련법령을 다루기로 해 실질적인 정책 조율을 할 수 있었다. 또 당정청의 핵심 지도부가 만나는 '9인회의'를 격주로 열어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했다. 지역구인 충남 발전을 위해서도 '사다리'가 되겠다는 것이 정 원내대표의 이번 총선 약속이다. 

[키워드②-JP]

정 원내대표는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정치적 아버지'로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교 졸업 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한 그는 1999년 당시 김종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명예총재의 특보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었다. "나에게 제이피(JP)는 정치적 아버지이자 스승"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듬해 JP가 만들었던 자민련 소속으로 출마, 마흔살의 나이로 고향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그는 2004년 총선에서 탄핵 바람이 불어 낙선했지만 2005년 보궐선거에서 심대평 당시 충남지사와 함께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다. 2008년에는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3선에 성공했지만, 2012년 서울 중구에서 출마해 또다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 총선에서 고향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 6년 만에 4선 의원의 반열에 올라 여의도로 재입성했다.

그가 원내대표에 선출된 뒤 곧바로 찾은 사람도 김 전 국무총리다. 그는 김 전 국무총리 자택을 찾아가 '협치'를 소재로 담소를 나눴다. '협치'를 20대 국회 화두로 내건 정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대부이자,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DJP연합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김 전 총리와의 만남을 통해 향후 국회 운영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키워드③-부친 정석모]

4선 고지에 오른 정 원내대표의 17년 째 정치여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15년 기자 생활을 마감한 그는 16대 총선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지역 선거구인 당시 충남 공주·연기의 15대 의원은 부친인 정석모 전 장관이었다. 흔한 말로 정치 대물림내지는 지역구 상속으로 보여질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는 오히려 "나는 정석모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매우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지역에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이냐?" "부자가 또 해먹느냐?" 등의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는 사즉생의 각오로 이를 극복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터진 것도 모르고 공주, 연기 지역을 뛰어다녔다. 목이 쉬어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지지를 호소해 금배지를 얻었다. 그의 정치철학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인 정 전 장관의 정치철학은 '화이부동(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는 않는다)'이다. 정 원내대표는 화이부동을 좌우명으로 삼고 아버지의 귀중한 가르침들을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정 원내대표가 '친박(친박근혜)'으로도 불리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정 원내대표의 선친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내무부 차관으로 활동했다. 정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은 대를 이어 '파트너십'을 이룬 셈이다.

[정치할 끼]

"우리 집은 성북동이었고 나는 인근의 성암국민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기타를 아주 잘 치는 친구가 한명이 있었다. 당시 열 살의 나이에 이미 클래식 기타를 마스터한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로부터 직접 기타를 배우게 됐다. 그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기타 연주자 한상원이다. 한번은 한 방송사에서 방영하던 일일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내가 활동하던 초등학교 동극(童劇)반 전체가 학급 역할로 출연한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최무룡, 백일섭 등 당대 유명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다는 것에 들떴었다. 그 드라마에서 나는 최무룡씨가 담임인 학급의 반장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농구부에서 활동했는데, 당시에도 제법 컸던 키는 농구를 하는데 꽤 유리했다. 이후로도 나는 태권도, 유도와 같은 운동을 가리지 않고 배웠다. 6학년 때 다니던 성암 국민학교가 홍익대학교 재단으로 넘어가 '홍익북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나는 오른손 약지손가락을 깨물어 '성암국민학교'라고 혈서를 썼다.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들은 그 사건을 회상하며 "넌 그때부터 정치할 끼가 있었어"라고 이야기한다. " (자서전 '사다리 정치'에서 발췌)
 
[그의 사람들]

정 원내대표는 여야 정치인들과 두루 친한 '마당발'로 통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와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다. 그는 친박계 의원들과도 가깝다. 그가 자민령, 국민중심당을 거쳐 2008년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을 때였다. 당선인 특사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전 당대표(현 대통령)가 서울의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환영한다. 큰 인재를 얻었다"는 환영 논평을 내도록 지시한 일화도 있다. 정 원내대표는 여당 내 소장파나 이재오계와도 관계가 좋다. 당내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꼽히는 당내 계파 갈등을 아우르면서 당의 화합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둬 거부감이 적은 데다 친화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한장의 사진]

정 원내대표의 마당발 인맥을 알 수 있는 사진. 현재 원희룡 제주도지사(첫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 정진석 원내대표(첫번째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첫번째줄 가장 오른쪽), 오세훈 전 서울시장(둘째쭐 가장 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정 원내대표는 2000년 당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요!주의]
정 원내대표는 여소야대 3당 체제라는 도전적 환경 속에서 총선 민의인 '협치'의 시험대에 섰다. 주어진 임기가 1년. 이 기간에 당의 쇄신을 이루고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게 된다면 정치인생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반대로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 

[프로필]△1960년 충남 공주 출생 △성동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국제부 차장·워싱턴특파원·논설위원 △제 16·17·18대 국회의원 △20대 국회의원 당선인(새누리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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