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설'까지 나왔을까

[the300]

박종진, 안채원 l 2024.04.17 18:05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에 따른 인적 쇄신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이른바 '양정철·박영선 해프닝'은 현 정권의 고심과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무총리 임명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인사에 쇄신 이미지를 담지 못해 여론이 더 악화하면 국정 주도권을 완전히 뺏길 우려가 크다.

17일 오전 일부 매체가 국무총리에 박영선 전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유력하게 검토한다고 보도하자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다. 박 전 장관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과 맞붙은 문재인 정부 대표적 인사이고 양 전 원장 역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측근이었기 때문이다.



尹대통령과 친한 '양정철·박영선' 그러나…


대통령실이 이날 오전 8시53분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박영선 전 장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인선은 검토된 바 없다"고 언론에 공지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보수진영 내에서 당혹감이 적잖았다. 이번 총선에서 5선에 성공한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처럼 당의 정체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인사는 내정은 물론이고 검토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양정철·박영선 카드'는 여권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윤 대통령이 마땅한 인물을 낙점하지 못해 고민이 길어지자 극단적 인선 구상까지 제안됐다는 얘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폭넓게 인사를 기용하려는 다양한 조언을 듣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실제 두 사람은 윤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 양 전 원장은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왔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유튜브 채널 등에서 문 전 대통령에게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한 사람이 양 전 원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문 전달을 위해 위원장석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던 박 전 장관은 지난해부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선임연구원으로 머물며 최근 '반도체 주권국가'라는 책을 냈다.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계기 하버드대 연설 때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장 선거 과정 등에서 박 전 장관은 스스로 윤 대통령(당시 검찰총장)과 연락하는 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野 허락 없이는 총리 임명 못하는 현실-인력풀 부족, 동시에 드러내


하지만 개인적 친분과 별개로 보수 지지층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는 이런 인선안이 흘러나온 건 현 정권의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 동의가 필수이기 때문에 야당의 찬성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미 '누구를 후보자로 지명하더라도 최소 한두 번은 국회 인준이 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 경우 '국정 발목잡기'라는 여론의 부담을 야당에 주려면 새롭거나 통합적인 이미지의 인사를 내놔야 하는데 매우 어렵다.

자칫 논란이 되는 인선을 했다가는 민심이 더 돌아서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이 각종 특검법 처리를 압박하고 나선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이를 막기 위해서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이자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의 효력을 살릴 수 있는 108석은 건졌다고는 하나 벌써 '채상병 특검'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 나오는 등 이탈표가 가시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 문제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근본적 문제도 또 한 번 환기되고 있다. 당초 우선 순위로 검토되던 '원희룡 비서실장-권영세 국무총리'도 원점 재검토되는 상황이다. 쇄신과 통합 등의 메시지를 한 번에 담아낼 수 있는 인사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해부터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인사철마다 줄곧 하마평에 오르는 것도 비록 새로운 인물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의 멘토이자 여야를 아우르는 원로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뉴스1) 민경석 기자 =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 있다. 2023.8.10/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인천공항=뉴스1) 민경석 기자



'한시적 유임' 가능성도…김경수 복권 '뇌관' 새삼 부각


인선 고민이 길어지면서 불가피한 '한시적 유임'이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국무총리의 경우 거대 야당의 인준 부결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유임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대통령실 참모 또한 시급한 교체 필요성이 낮은 상황이다. 인사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관섭 비서실장과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은 대통령실 안팎에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총선에 지는 바람에 가장 '국민 눈높이'를 신경 쓰는 참모들이 정작 쫓겨 나갈 판"이라는 우려조차 나오는 분위기다. 이들은 총선 정국에서 심판의 방아쇠가 된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논란과 대파 사건 등에도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

한편 '양정철·박영선 카드'는 야권에도 상당한 파장을 남기고 있다. 차기 대권을 둘러싼 팽팽한 물밑 긴장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이나 박 전 장관과 같은 친문 인사들이 현 정권에 등용된다면 윤 대통령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복권 시킬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게 이런 흐름과 맞닿는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김 전 지사는 2027년 말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라서 차기 대권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복권해 준다면 야권 대권 경쟁 구도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정통 민주당 세력의 적자인 김 전 지사는 서울대 학생운동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착한 경수'로 불릴 정도로 신망이 두텁고 진영내 기반이 탄탄하다. 단숨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협할 세력으로서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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