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만큼 쓰는 '페이고' 입법 파장…오해와 진실

복지수요 폭발, 당장 도입 어려워…비용추계 첨부 등 페이고 유사 법안들은 처리될 듯

진상현 l 2014.02.25 06:01
정부와 여당이 정부 재정이 소요되는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 확보 방안을 함께 제출토록 하는 '페이고(Pay-Go·번 만큼 쓴다)' 관련 법안 도입을 추진키로 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빠듯한 정부 재정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 복지 수준이나 법안 심의 환경과 맞지 않아 행정부에 의한 의회 예속만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권도 당장 엄격한 페이고 도입에는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은 입법시 재정 고려를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이 우선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관심에 '화들짝'= '페이고'라는 낯선 단어가 갑작스레 정치권의 관심사가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이들 법안 처리에 관심을 나타내면서다. 이에 새누리당이 관련된 일부 법안들을 2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했고 이 내용이 언론을 통개 공개됐다.

페이고는 사전적 의미로 의무지출(법으로 정해진 정부 지출)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입법을 하고자 할 때 이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조달 방안이 동시에 입법화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정부 재정지출 항목이 추가됨으로써 재정수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5월부터 정부 발의 법안에 대해 내부 지침에 따라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만 법으로 엄격히 적용하고 있지 않다. 국회법상으로도 정부 발의안에 대해서는 재원 조달 방안을 같이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이 없다. 해외에서는 대표적으로 미국이 1990년에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폐지했으나, 재정적자가 다시 급증하자 2010년 영구적으로 도입했다.

◇페이고 법안 당장 도입 어려워= 이미 발의된 법안 가운데 페이고 법안에 해당하는 것은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과 이노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이노근 의원안은 정부 발의 안처럼 의원 발의안도 발의시 재원 조달 방안을 함께 제출토록 했다. 이만우 의원안은 정부와 의원 법안 모두에 대해 의무지출 또는 재정수입 감소를 수반하는 법률안(법령)을 제출할 때 해당 의무지출의 증가 또는 재정수입의 감소분 만큼 다른 의무지출을 감소시키거나 재정 수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법률안(법령)을 함께 제출토록 하고 있다. 재원 조달 방안을 법으로 제출해야 하는 만큼 이만우 의원안을 좀더 엄격한 규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이 바로 도입되기는 힘들다는 게 입법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우선 아직 선진국에 비해 아직 복지 지출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페이고가 도입될 경우 국민 복지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국회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도 복지 지출이 충분히 이뤄지고 복지국가를 이룬 시점에서 도입이 됐다"고 말했다.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예산편성권을 정부가 가고 있어 의원들의 입법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부처의 경우 재원 조발 방안 마련을 위한 사업예산 조정에 대한 협의가 용이한 반면 의원들의 경우 부처간 협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페이고 도입을 두고 "행정부의 의한 국회 장악 시도"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재정 고려 강화 법안은 처리될 듯= 다만 재정 관리를 위해 법안 발의시 재정 고려를 강화하는 법안들은 법제화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의원입법시 국회 예산정책처가 제시한 비용추계서를 반드시 첨부토록 하는 법안(새누리당 이완영 의원 발의)이 오는 27일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현재도 비용추계서를 제출토록 하고 있지만 예산정책처 추계가 아니어도 가능하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수정·병합하는 경우는 제출하지 않아도 돼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의원 발의시에도 정부 발의 때처럼 연간 조세특례금액이 일정기준 이상인 조세특례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을 내려면 전문기관 평가자료를 함께 제출토록 하는 법안(새누리당 안종범 의원 발의)도 2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페이고 법안 도입에 대한 시도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만우 의원은 최근 현실적인 페이고 법안 도입을 위해 예산정책처에 용역을 발주했다. 이만우 의원실 관계자는 "6월 쯤 공청회를 거쳐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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