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 부추긴 法… 또 '보스공천'

[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5회]② 보스공천의 역사

이원광 기자 유효송 기자 l 2020.03.30 18:35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선거법은 돈과 말과 발을 다 묶고 빽만 키운다. 당대표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국회의원들이 사석에서 하는 얘기다. 공직선거법 제254조를 보면 ‘공식 선거운동기간 전 인쇄물, 방송·신문·뉴스통신·잡지 그 밖의 간행물, 정견발표회·좌담회·토론회·향우회·동창회 등의 방법으로 선거운동하는 것을 금한다’고 나온다.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선거운동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일 120일 전부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에 한해 제한적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여야, ‘보스 공천’의 역사, 이번에도…



유권자 입장에선 선거를 앞두고 등장한 새 인물이 생뚱맞다. 정치꾼, 선거 철새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 신인이 유권자를 만날 시·공간이 제약된 현실 때문이다. 공천 과정부터 지역 유권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당 지도부가 고른 후보에 투표하는 게 당연시된다. 메뉴판을 국민이 만들지 못한다. 인지도·적합도 조사, 국민 선거인단 등 장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인기 투표 수준에 머문다. 그마저도 강성·열성 지지층 목소리에 좌우된다. 득점 포인트를 알게 되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합리적·생산적 대안보다 맹목적 비난을 쫓게 된다.  기존의 타락한 진영의식은 이렇게 퍼진다.

공천의 최종 권한은 당 지도부의 몫이다. 후보자는 장기판의 돌에 불과하다. 당 지도부가 택하지 않으면 경선 기회조차 받을 수 없다. 당은 획일화된다. 다양한 목소리는 사라진다. 진영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도 한목소리만 강요한다. 소장파·소신파 등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다. 궤변을 모른 채 하는 게 생존법칙이 된다. 

총선을 앞둔 양정당의 공천 과정도 그렇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시스템 공천’을 선언하고 공정한 공천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평가는 싸늘하다. 

민주당은 지난 1월20~28일 전국 253개 지역구에 대한 후보자 공모를 실시하고 전략 지역 15곳과 대구서구 등 공모 미신청 지역 4곳을 제외한 234곳의 공모 결과를 발표했다. 한달 후 전국 87곳에 대한 대규모 추가 공모를 실시하면서 일부 후보자들을 허탈하게 했다. 또 당초 ‘전략 공천’이나 ‘인위적 물갈이’는 최소화한다는 기존 방침과 달리 적잖게 내려 꽂았다. 

미래통합당은 후보 등록 직전까지 공천을 둘러싼 내홍을 겪었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당 지도부가 뒤집은 것만 해도 수차례다. 지도부가 ‘조율’이라는 명분 하에 판을 흔들었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공천 과정의 ‘한선교 난 ’도 공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후보자-유권자 간 접촉면 제한 없이 넓혀야”



현행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선거 운동 및 기간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제한한 공직선거법 58, 59, 254조가 대상이다. 

‘칼로 두부 자르듯’ 표현의 자유 영역을 규정한 현행법 체계에선 유권자 혼란과 정치 표현 기피가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역할도 논의 대상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관위는 주로 정치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업무에 집중할 뿐, 후보자나 유권자, 정당 활동 등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정경 유착이나 불법 정치 자금은 막아야 하나, 후보자나 유권자의 정치 활동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유권자는 떠들지 말라’, ‘우리(당)가 차려준 밥상에서 김치 먹을 것인지, 오이지 먹을 것인지만 선택하라’는 게 현행 공직선거법의 기본 구조”라며 “독재자와 친구들을 위한 제도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정당 보스와 측근을 위한 제도로 기능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선 유튜브를 통해 호별 방문 ‘팁’을 홍보한다”며 “불법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호별 방문을 해야 표를 더 얹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후보자와 유권자 간 접촉면을 제한 없이 넓혀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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