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이회창의 책 제목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23)대선캠프는 외양보다 실무역량

정두언(17·18·19대 국회의원) l 2017.01.24 04:00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맨 오른쪽)가 시도 선대위 전체회의를 주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3. 대선캠프는 외양보다 실무역량이 중요.

과거 한나라당 이회창 시절의 얘기다. 자료 전달차 아침 일찍 여의도 캠프에 갈 일이 있었다. 자료를 요구한 의원이 회의중이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회의는 오전 내내 계속되더니 점심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자료는 전달했지만, 도대체 무슨 중요한 일인가 궁금했다. 

알고보니 이회창 총재가 새로 책을 내는데 그 책 제목을 정하는 회의였다 한다. 헐! 소위 이회창 캠프의 핵심 7인방 의원들이 모여서 몇 시간 동안 한다는 회의가 고작 그거라니. 더구나 그날 결정도 못했다고 했다.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처음 찾아간 사람은 당시 약관 29세의 선거전략가 스테파노폴루스였다. 그는 클린턴의 요청에 응하면서 요구한 첫 번째 조건이 ‘당신의 약점을 내게 다 털어놓세요’였다고 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 선거를 총괄한 사람도 무슨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아닌 당대의 선거전략가 칼 로브였다. 칼 로브는 일관되고 과감한 집토끼 전략으로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의 두 사례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대선캠프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과시적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여기에는 우리 언론의 단순 무식함도 크게 작용한다. 캠프의 역량은 보지 않고 단지 그 위용만 보려하는 무사안일함 말이다.

알다시피 이회창의 예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곧 다가올 대선에서도 각 캠프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들로 구성된 화려한(?) 위용을 과시하려 할 것이고, 각 언론은 그 면면에 초점을 맞추어 대서특필할 것이다.

역대급 대선 후보 경선이었던 이명박 대 박근혜 경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 캠프의 운영을 보면 이명박 캠프는 실무역량 위주로 돌아간데 반해 박근혜 캠프는 전현직 의원들 위주로 돌아갔다. 물론 여기에는 이명박 캠프에 현역의원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던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 특유의 실용적이고 유연한 성격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이명박 캠프의 운영을 총괄했던 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회창 캠프의 한 귀퉁이에서 몇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 때 내가 그 회의에 있었다면 5분 만에 회의를 끝냈을 것이다. "책 제목 같은 문제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출판 전문가에게 맡깁시다" 하고. 

거창한 선대위는 필요없다

2007년 여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직후 MB로부터 선대위를 구성하라는 지시를 받은 나는 선대위를 거창하게 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 가운데 성공한 정권이 없다. 모두 다 실패하고 말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실패의 양태가 거의 비슷하다. 심지어는 문제의 내용과 발생시기가 대강 비슷하다. 역대 정권의 사건일지를 만들어 겹쳐보면 중첩되는 경우도 많다. 이 얘기는 무엇인가. 되풀이되는 정권의 실패에는 무언가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얘기다. 

단임 정권들은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 집권과정에서 모든 문제를 잉태하는데 그 과정이 유사하니, 집권 후에 산출되는 문제도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친인척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문제가 왜 되풀이 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극히 단순화 시키면 결국 대선자금이 문제다. 

경선을 비롯해서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정 비용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전두환, 노태우 때는 조 단위였고, YS(김영삼), DJ(김대중) 때는 수천억 원 단위였다가 노무현, MB 때는 1000억 원 단위 아래로 내려온다. 액수의 규모가 줄어들었으나 사회의 정치자금 흐름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면 줄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또 그 돈이라는 게 법정비용 이상의 돈이고, 불법적인 자금이다.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것을 믿고 맡길 사람은 친인척뿐이다. 가족에게 자금 관리를 맡기는 또 다른 이유는 떼어먹어도 덜 아깝기 때문이기도 했다. 

역대 정권에서 대선자금은 예외 없이 친인척이 주로 담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친인척인데 위험부담이 큰 돈까지 관리를 하니 그의 힘은 견줄 자가 없기 마련이다. 자연히 권력 실세가 된다. 그런데 이 실세 주변에 사람이 몰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실세 주변에서 그를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이들이 매번 되풀이 되는 낙하산 인사와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된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맨 오른쪽)가 중앙 선대위 회의를 주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당시 대선은 MB가 이긴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캠프를 방만하게 꾸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캠프를 방만하게 하는 제일 큰 요인은 조직, 직능이다. 그래서 나는 MB 캠프에서는 조직, 직능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조직은 표도 안 될뿐더러 돈만 많이 들어가고 혼란만 가중시킨다. 그리고 결국 집권 후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야기 시켜 정권에 부담만 주게 할 것이다. 선대위를 가볍게 꾸리면 그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그러니 경량급으로 꾸리자."

대선은 지상전보다 공중전…조직선거 무의미

그래서 선대위에서 내 직책은 전략기획팀장이었다. 역대 캠프에서 실세라고 하는 자의 직책이 팀장이었던 적은 없었다.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상징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다. 이러면 누가 와서 캠프의 본부장이나 위원장을 시켜달라고 하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구상은 실패하고 만다. 이상득, 최시중 등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그들에게 다 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사람이 몰려들면 물리적으로 거절하기 힘들다. 결국 그 부담을 못 이겨서 조직본부를 만들고 직능본부를 만들면서 결국 선대위는 과거의 선대위와 같은 모양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에서 조직은 큰 의미가 없다. 조직이 약한 노무현이 이것을 보여줬다. 조직이 뭐냐. 조직은 원래 A를 찍을 사람을 조직을 동원해서 B를 찍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서 A를 찍을 사람이 나중에 B를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선은 배운 사람이든 안 배운 사람이든, 가진 사람이든 못 가진 사람이든 자기가 좋은 사람을 찍지, 누가 이 사람을 찍으라고 해서 찍지 않는다. 

대선은 공중전이다. 지상전은 거의 의미가 없다. 역대 정권을 보면 박철언이 시작한 월계수회부터 시작해서 대선 조직의 계보들이 있다. YS는 중앙청년회, DJ는 민주연합청년회가 있었다. 노사모· 박사모는 자발적인 조직이기에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런 조직은 오히려 파워가 있다. 아직도 야당에서 친노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자발적인 노사모의 파워 때문이다. 

월계수회 같은 지상전용 조직은 돈만 먹는 하마이고, 표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솔직히 말해 조직이 아니라 그냥 명단에 불과하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정치적인 사기라 할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의 선진연대도 비슷했다. 선진연대라는 조직의 명단에는 온갖 교회 명부가 다 들어가 있다. 소위 대선에서 조직한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명단 장사에 불과하다. 이게 월계수회부터 선진연대까지 반복되는 것이다. 

역대 대선마다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되면서 낙하산 인사로 이어지고, 각종 이권 청탁으로 이어졌다. 노태우-박철언, 김영삼-김현철, 김대중-세 아들, 노무현-노건평, 이명박-이상득으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 권력실세의 계보와 그 운명이 이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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