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끝" 정치권이 공 던진 '단두대 매치'…국민분열 자책골

[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1회- 변질된 팬덤정치]

이원광 기자 l 2020.03.16 08:54
[편집자주]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팬덤 정치’가 변질됐다. 자발적인 정치 운동이 ‘팬덤’ 간 사활을 건 혈투로 번지면서다. 극도로 예민해진 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관계 파악과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노력은 곧 ‘해당’ 행위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과 거리가 먼 싸움에 투신한다.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듯, 특정 정치인과 세력에 감정을 이입한다. 각종 의혹 제기되거나 해소되는 데 일희일비한다. ‘월드컵 정치’의 시작이다. 정치권은 웃는다. 정치에 과몰입한 ‘팬덤’이 특정 세력의 안위를 위해 투신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팬덤’이 자기 세력의 이익에 앞장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자발적 정치 참여…‘팬덤 정치’ 시작은 좋았다


정치권 ‘팬덤’의 기원은 크게 여권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와 야권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로 양분된다. 이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과 굵직한 사건에 따라 분화, 확장, 통합을 반복했다.

초기 ‘팬덤’은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다. ‘노사모’가 대표적이다. 2000년에 등장한 ‘노사모’는 각 세력의 ‘보스’와 측근들이 주도하는 과거 정치와 결별을 선언했다.

조직된 시민들이 정치 주체로 성장하면서, 공급자 중심의 정치에서 소비자 중심의 정치로 변화를 시도했다. ‘박사모’ 역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있었다.
국회 본회의장




◇특정 정치인에 울고 웃고


‘노사모’ 설립 20년, ‘팬덤 정치’는 위기를 맞았다. ‘문빠’, ‘태극기 부대’로 세를 불린 각 진영의 ‘팬덤’이 국민 분열에 앞장서면서다. 이들은 ‘피아 식별’을 거쳐 확인된 아군에 맹목적 지지를, 적군에겐 무차별 공세를 펼친다. ‘팬덤’의 상실감 혹은 부채 의식과 무관치 않다. 검찰은 고향으로 돌아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인척, 측근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였고, 이 과정이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여론을 들끓게 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까지 ‘선’을 넘을 채비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이 끝내 서거하면서 이들은 격한 감정에 기반한 소모전에 돌입했다. 지지자 중에서도 끝까지 같은 편에 섰던 이들은 상실감을, 비판에 맞장구 쳤던 이들은 부채 의식을 견뎌야 했다.

결속은 더 단단해졌다. ‘조국 사태’ 때 공지영 작가가 ‘논두렁 시계’를 언급하자 지지자들이 결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흉탄에 부모를 잃은 비극적인 일들은 그 자체로 지지자들의 감정을 움직인다. 사상 초유의 탄핵과 검찰 수사, 구속, 재판 등은 박 전 대통령을 ‘수호의 대상’으로 진화시킨다. ‘태극기 부대’가 국익을 명분으로 내걸면서도 이와 무관하게 박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고, 문 대통령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0 월드컵 정치’ 개막


정치 과몰입 현상은 국민 분열의 기폭제다. 이른바 ‘월드컵 정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한 공세에 눈시울을 붉히거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떠나 조 전 장관이나 가족들을 인격적으로 비난했던 이들이 ‘월드컵 정치’의 소비자다.

정치권은 ‘월드컵 정치’의 공급자다. 여야는 지난해말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하거나 막아설 때마다 ‘국민의 뜻’이라며 과몰입을 호소했다.

한평생 검사를 만나기 어려운 평범한 시민들에게 검찰 개혁이 왜 중요한지, 1년여간 선거제 개편을 위한 협상에 나서지 않은 것이 과연 국민의 뜻인지 등은 설명되지 않았다. 합리의 실종, 궤변의 일상화다.
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정치권, 정치적 과몰입 ‘월드컵 정치’ 선동”


‘월드컵 정치’는 정치적 ‘컨슈머리즘’(소비자중심주의)에서 기인한다. ‘컨슈머리즘’의 부정적 속성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결합하면서 각 진영의 지지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분석이다.

이원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키워드가 꾸준히 증가했다”며 “민주화가 더 돼야 한다는 정서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진보운동·민주화 세력이라는 이들이 정작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대중주의적 언어”라며 “이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각 진영이 소위 ‘정치 소비자인 국민이 왕’이란 구호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정치 과몰입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나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타협 공간은 사라진다.



◇‘월드컵 정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월드컵 정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 정치 과몰입에서 벗어나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의 뜻으로 홍보되는 각종 현안이 결국 어느 세력에 이익이 되는지 집중하면, 현안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이 교수는 “각 정파가 가진 관심사가 공공의 관심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마치 이것이 사회의 공공선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며 “이건 굉장히 잘못된 인식인데, 이걸 바로 잡아야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립성과 객관성을 인정받는 전문가로 이뤄진 ‘중간 그룹’도 중요하다. 박진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국내엔 이같은 ‘중간 그룹’이 없다보니 (정치권이) 합의가 안 되면 상대 탓을 하고 끝낸다”며 “건강한 진영 의식을 회복시킨 진영이 힘을 받으면 각 정치세력의 태도로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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