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정치인 백재현의 우보만리(牛步萬里)

[the300][의원사용서설명서]시·도의원, 시장 거쳐 국회 입성…새정치연합 대표 정책통

지영호 기자 l 2015.01.16 09:00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담뱃값 인상을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다면 결국 막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늘어난 세수를 지방재정으로 돌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여야가 국회 본회의에서 2015년도 예산안 처리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1일,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부랴부랴 법안 하나를 발의했다. 담뱃값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중 20%를 지방자치단체의 소방안전교부세로 돌리는 지방교부세법 개정안이었다.

담뱃값에 매겨지는 세금 일부를 부족한 지방재정과 소방예산 확충에 쓰자는 것이었다. 연내 담뱃값 인상을 목표로 했던 여당도 백 의원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비도 있었다. 세입부수법안이 아니다보니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했다. 백 의원은 국회법 85조를 들어 여야 합의로 곧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결국 이 법안은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를 통과했고, 지자체는 소방안전예산 314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새정치연합의 정책분야 구원투수로 나선 백재현 정책위원회 의장은 3개월 간 굵직한 여야 협상을 이끌어냈다. 세월호 진상규명특별법과 피해구제특별법, 특별조사위원 5인 인선작업 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축산농가의 FTA 구제책과 예산 법정기한 처리에도 기여했다.

주요 협의 때마다 여당과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협상 파트너인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주(호영)바라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협상 의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나친 협상 의지는 가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지난해 예산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 의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논란이 됐다. 백 의장이 보낸 '주의장님 담배값 인상에 우리당은 절대다수가 반대임. 가결 특별대책 강구 하시길‘이라는 내용 때문이었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담뱃값 인상안에 반대를 고수하다가 누리과정 예산 등을 관철시키는 조건으로 예산안 통과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날 상속·증여세법이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야당 정책위의장인 백 의원이 여당 의장에게 ‘표 관리’를 당부한 것이다.

당 내부에서는 “과도한 여당 챙기기”라거나 “협상에 매몰돼 본분을 망각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제공=백재현 의원실

[스토리]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적 조세전문가다. 초선의원시절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에서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를 상당 부분 막아내는 성과를 거두는 등 대표적 민생경제 전문가로도 평가 받는다.

전공분야인 세법을 비롯해 지방재정 등의 논의에서 전문가 수준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 정세균, 한명숙, 문희상 당대표 체제에서 두루 등용됐다.

비전공분야에서는 서민주거 정책이 눈길을 끈다. 뉴타운 건립 시 아파트 저층부에 고령은퇴자 커뮤니티가 있는 실버주택 공급 제안이나 18대 등원부터 준비해 발의한 원주민 및 세입자 재정착시설에 대한 국고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원주민재정착지원법(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등은 그가 내놓은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 아이디어다.

백 의원이 부동산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는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그의 책 ‘힘들수록 광명정대’에서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고 3남매만 상경해 노량진의 무허가 주택에 살았는데, 구청 철거반이 출동해 집이며 가재도구며 닥치는 데로 부수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며 “허물어진 집 앞에서 3남매가 눈물을 흘리던 1970년 6월25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서술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몇 안되는 국회의원이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곧바로 국세청 말단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12년을 세무공무원으로 지내다가 1981년 세무사 시험 합격을 계기로 개인사무소를 내고 세무사로 활동했다. 평민당과 국민회의의 외곽 정치세력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에 1990년 가입, 이듬해 초대 지방의회선거에 나서 광명시의원으로 정치인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1995년 경기도 도의원, 1998년과 2002년 지방선거에서 광명시장으로 당선됐다.

백 의원은 “광명시장으로 8년간 열정을 쏟아붓다 보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며 “1년을 쉬고 중앙에서 더 큰 정치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회의원에 도전하게 됐다”고 여의도 정치를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8대와 19대 총선에서 모두 51%의 득표율로 연이어 뱃지를 달았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를 거쳐 10월부터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세월호 3법 타결 및 배보상 문제, 임시국회 정상화 등 여당과의 굵직한 협상에 직접 관여했다.

[프로필]
△1951년 전북 고창 △경기대 무역학과 △민주당 중앙당 중앙위원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위원 △민선 2, 3기 경기도 광명시장 △18, 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2010년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사진제공=백재현 의원실

[키워드-우보만리]

‘우직한 소가 만리를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는 백 의원에게 어울리는 고사성어다.

첫 인상만 보더라도 소를 연상하기 충분하다. 순박한 인상과 널찍한 풍채에서 소의 듬직함이 느껴진다. 성품도 그렇다. 온순하고 믿음직해 결코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맡은 바 임무는 끝까지 해내는 게 백 의원의 스타일이다.

태생적으로 근면한 것도 소와 닮았다. 경기도 광명 집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출근을 마친다. 출근해서는 의원들을 상대로 열리는 정책포럼과 국회 최고위 정책과정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국회 관계자 조차 “2008년 이후 한 차수도 거르지 않고 정책과정을 수료한 유일한 의원일 것”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그의 정치인생도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왔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던 해 광명시 시의원을 시작으로 경기도 도의원, 민선 2·3기 광명시장을 지냈다. 이후 2008년과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에서 기초의원-광역의원-기초단체장-국회의원을 단계별로 밟은 최초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원내에 진입해서도 마찬가지다. 초선 시절 민주당 정책위원회에 몸을 담았고, 제4정조위원장과 정책위 수석부의장을 거쳐 정책위의장에 오르는 등 정책 분야에서 ‘단계’를 밟은 잔뼈 굵은 정책통이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그를 두고 “백 의원처럼 차근차근 성장한 정치인은 거의 찾기 힘들다”며 “에스컬레이터 정치인이라고 별명을 지어주고 싶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키워드-정책]
현장에서 찾는 민생 정책이 새정치연합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인물 중 하나다.

일례로 광명시장 시절 같은 생활권인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시외 규정이 적용되는 것을 보고 서울권 편입을 위해 고건 당시 시장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이를 관철시켜 광명시에도 서울 택시가 다닐 수 있도록 한 게 백 의원이다. 지금까지 서울 택시가 시외 규정을 받지 않고 다니는 곳은 경기도 내에서 광명시가 유일하다.

그는 국가 개조와 정치개혁을 위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고 믿는 개헌론자다. 올해만큼 개헌에 적절한 시점이 없다고 주장한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참여 중이다.

대한민국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남북통일 기반 구축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신창민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 ‘통일은 대박이다’를 인용해 남북간 소득조정기간을 10년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며, GDP의 7% 정도를 통일비용으로 조달하기 위한 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백 의원은 “1%는 국가 재정, 3%는 차관 도입, 2%는 바이코리아 정책으로 하고 나머지 1%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안이 적절해보인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해법은 인적교류가 시작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아버지가 경제 키워드로 각인된 것처럼 박 대통령은 개헌 또는 통일에서 성과를 이뤄야 역사에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왼쪽)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지난해 12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배보상TF 회의에서 회의 시작 전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그의 주변엔 누가]
정치 입문 계기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통해서다. 문 위원장은 1985년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시절, 재정실장인 백 의장을 눈여겨보고 연청 경기도지부장으로 앉혔다.

민주산악회가 YS의 사조직으로 불렸다면 연청은 DJ 친위부대 격이다. 문희상, 정세균, 이석현, 김홍일 등 국회의원 다수를 배출한 민주당의 성골 집단이다. 백 의장은 연청 중앙회 부회장 시절 회장이던 정세균 의원과 연이 닿아있다. 그가 간혹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백 의원은 “정세균 선배와 친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굳이 따지자면 정치 입문에 영향을 준 문희상계로 보는 것이 맞지만 그런 계파는 없으니 난 그냥 무당파로 분류해달다”고 항변했다.

백 의원은 199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국민회의 최고위원에 도전하던 때 선거를 도운 것이 인연이 돼,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자치경영연구원) 초대 감사로 활동했다. 이곳 출신의 원혜영 의원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인연이 있다.

특히 동갑내기인 원 의원과 백 의원은 민선 2·3기 때 각각 부천시장과 광명시장을 지내면서 친구로 지냈다. 경륜장 유치를 놓고 맞대결을 펼친 인연도 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는 광명시의원 때부터 친분을 쌓았다.

현재는 원내 파트너인 우윤근 원내대표와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협상 파트너인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매일 얼굴을 맞대는 사이다.

[대표법안→입양특례법]
야당 정책위의장답게 다수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유독 ‘입양특례법 개정안’에 애착이 많다.

초선 시절 백 의원은 ‘베이비 박스’가 설치된 서울 관악구의 한 아동보호시설에 현장점검 차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기를 놓고 가는 사례가 부쩍 줄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2011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가정법원에서 입양허가를 얻기 위해 출생신고 등 서류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뿌리찾기’라 불리는 입양된 아동의 친부모를 찾는 근거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미혼모가 친자관계를 공적으로 남기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영아유기나 불법입양, 낙태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는 즉각 법 개정에 나섰다. 청소년미혼모의 경우 출생신고를 선택하게 하고, 장애아동의 경우 국내입양과 해외입양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이 법은 유기 아동수가 늘었다고 볼 구체적 근거가 없고, 미혼모의 아이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논리에 밀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백 의원은 “단통법처럼 취지는 좋지만 시행후 문제점이 드러나는 법안이 우리 주위에 많다”며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제도적 문제로 인해 헛되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시각에서 법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연관검색어→LOL]
백 의원은 2013년 11월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온라인게임 LOL(League Of Legends)의 과몰입 현상과 함께 선정성 문제를 지적했다가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백 의원은 ‘LOL인가 에로L인가’라는 제목의 PPT 자료를 내놓고 게임속 캐릭터의 노출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팬들은 실제 게임상 이미지가 아닌 이용자들이 그린 ‘팬아트’인 데다 게임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미국 본사는 놔두고 한국지사 대표를 불러 지적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비난했다.

곧바로 백 의원의 홈페이지는 팬들의 항의글로 도배됐고 접속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어졌다.

백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홈페이지는 폭파 수준이었다”며 “새로 홈페이지를 구축하느라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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