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책임총리가 가능하려면②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9)

정두언(17·18·19대 국회의원) l 2016.12.29 18:38

편집자주 "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the300을 통해 전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머니투데이

9. 우리나라에 책임총리가 가능한가?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상술한 바와 같은 부조리한 권력의 조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정·부통령제를 만들어 대통령이 권한·책임을 동시에 지는 책임정치를 하는 것이고, 둘째, 현행 법체계에 맞는 책임총리를 임명하여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대안은 우선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우리나라 국무총리제의 골격은 이승만정권 때 6.25전란의 와중에서 벌어진 부산정치파동의 타협적인 수습결과로 나온 발췌안개헌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무총리제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조선시대의 임금 및 재상체제와 너무 흡사하다. 조선시대 때도 민심의 이반이 심각한 상황이 오면 왕을 대신해 정승들에게 책임을 묻곤 했는데,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맥락은 이래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헌법개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고, 또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그러니 헌법개정을 통한 국무총리제 폐지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두 번째 대안은 대통령이 책임총리를 임명하여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속된 말로 총리가 다해먹으면 대통령이 할 일이 뭐냐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가 할 일은 또 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과거 조선 초에 이방원의 불만이 그것이었다. 정도전이가 다 해 먹을 거면 우리가 뭐하려고 목숨 내놓고 역성혁명까지 했냐는 것 아니었던가? 왕조시대 때부터 있어온 이른바 왕권이냐 신권이냐의 권력배분 또는 권력갈등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논쟁거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권력자는 권력의 속성상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2인자를 두려하지 않거나, 2인자를 수시로 바꾸거나, 2인자를 여럿 두어 경쟁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최종 결정이야 대통령이 한다지만, 총리가 실질적인 임명제청권을 가지고 내각을 통할하면 그 총리가 사실상의 강력한 2인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비슷한 수준까지 갔던 두 케이스를 한 번 보자.

 

이회창의 경우는 알다시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우루과이라운드(UR)의 곡물협상 파동에 따른 민심수습 차원에서 국민의 신망이 높은 그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자존심이 강하고 기가 센 이회창은 자기의 법적인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려다가 결국 대통령과 충돌하고 4개월 여 만에 사퇴해버린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는 나의 책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관련 부분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이해찬의 경우는 독특하고 도전적인 캐릭터의 소유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유의 소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너 한번 제대로 해보라’는 식으로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행사를 허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노무현의 책임총리제에 대한 실험은 이해찬의 3·1절 골프파동으로 싱겁게 끝나고 만다. 그나마 책임총리 비슷하게 총리직을 수행한 이 두 사람의 케이스도 결국 성공적인 선례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제 남은 길은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을 분담하는 이른바 역할분담론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은 다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헌법을 개정하여 2원집정부제로 가는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 주도로 만든 헌법개정연구팀이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권력구조개편을 위한 헌법개정안이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의 복수안이다. 


알다시피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외치에 집중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국무총리는 내치에 전념하는 정부형태가 바로 이원정부제이며,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이 제도를 채택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안은 역시 헌법개정이라는 현실적 장벽으로 인하여 당분간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은 헌법개정 없이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청와대와 총리실이 역할과 기능을 분담하는 형태의 정부조직개편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청와대에는 비서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외교안보수석, 민정수석 등을 두고, 경제, 사회문화, 복지 등 내각의 기능과 연계된 수석실은 국무총리 소관으로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총리실에는 경제수석, 사회복지수석, 교육문화수석, 건설교통수석, 과학기술수석 등을 두어 내각과의 가교 또는 조정 역할을 맡게 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 전체의 국정운영에 있어 비효율과 업무지연이 없어지고, 책임소재도 명확해진다. 특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는 사람이 국무총리가 되면 대통령의 과중한 업무부담이 대폭 줄어들어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청와대와 내각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방안의 실효성 여부를 담보하는 것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이기 때문에 제도적 안정성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청와대와 총리실간의 갈등과 대립 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국무총리의 역할과 기능을 중시하는 국정운영 시스템과 관련하여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가장 맞는 개선안이 상기안이라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나누어주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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