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대통령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12)

정두언(17·18·19대 국회의원) l 2017.01.05 16:40

편집자주 "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the300을 통해 전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사진=뉴스1

12. 대통령은 일을 열심히 하면 안된다.

MB정부 때 일이다. 민심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다들 걱정을 하자,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한 친구가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은 일은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일을 자신이 챙기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며, 오만하고 독재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또 일이 잘 되는가? 그렇게도 안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에 책임만 지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일을 챙기겠는가. 처음부터 무리한 접근이다. 대통령은 각 부처의 업무에 따라 능력에 맞는 사람을 임명해서 그 사람이 충분히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것, 이것이 대통령의 정상적인 권한이다. 

너는 내가 임명한 사람이니 네 권한이 다 내 것이고, 결국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은 애초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시도하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지도자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책임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소신껏 일해라. 내가 책임진다. 어려운 것 있으면 나에게 얘기해라.’ 이것이 보스의 자세이다. 그런데 우리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다. 권한은 행사하지 못하게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장관에게 돌린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해경에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해 버렸다. 이런 식이면 검찰, 경찰이 잘못하면 다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나경원 보궐선거 캠프의 사례

2014년 7월 30일 재보선에서 당선한 나경원 의원 캠프의 사례를 살펴보자. 캠프는 20여 일 운영됐지만 모두 기분 좋게, 재미있게 일했다. 내부에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보통 선거캠프는 다국적군이 와서 일하다 보니 항상 내부에서 싸우다 끝난다. 당시 캠프요원들이 해단식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다들 신기해했으며, 이구동성으로 과거 서울시장 캠프보다 훨씬 훌륭하고 유능했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도 동의했다. 

당시 내가 나경원 캠프의 좌장이었다. 

나는 첫날 캠프를 꾸리고 각자 역할을 분담한 후 이튿날부터 ‘내 역할은 끝났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다 해라. 대신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문자나 전화로 얘기해라’ 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그 이후 내 핸드폰에는 문자들이 쏟아졌다. 나는 웬만하면 계속 ‘좋아요’를 눌렀다. 실무자들이 문자를 보내는 이유는 ‘제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혹시 잘못되면 책임 좀 져 달라’는 의미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실무자들은 신이 나서 일했다. 만약 내가 사무실에 차고 앉아서 결재받기 시작하면 매사 결재하느라 속도가 느려지고, 누군가 나를 독점하려고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캠프에 자주 나타나지도 않았고, 가끔 나타나면 대강의 흐름만을 정리해주고 자리를 떴다. 캠프에 갈 때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청바지에 티를 입고 갔다. 

리더가 자신이 다 결재를 하겠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밑에서는 책임질 일이 생기면 무조건 다 결정을 위로 미룬다. 그러다 보면 병목 현상이 일어나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권한도 안주는데 누가 책임지고 일하려고 하겠는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7.30 재보선 동작을 새누리당 후보 시절 김무성 대표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14.7.29/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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